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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문화

보령의 문화 글의 상세내용
제목 열사 백관형
구분 역사인물
내용 오직 조국(祖國)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烈士) 백관형(白觀亨)

「한 나라가 나라를 잃게된 책임을 어째서 임금님께만 돌려야 하는가? 백성에겐 책임이 없단 말인가?」오랬만에 가까운 선비들과 자리를 같이 하였다가 밤이 어두워져서야 서로가 헤어질 때 그는 이렇게 한마디 말을 던지고 그들과 헤어졌다. 어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발길은 무겁기만 했다. 이제는 나라도 없는 백성이구나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조선시대500년의 역사는 길기도 했다고 생각을 했다. 아니 그것보다도 사직(社稷)을 지키는 왕의 괴로움은 가까운 여러 신하의 바른 보좌가 있었던 해가 얼마나 되었었을까 하고도 생각을 했다. 백성들의 깨우침도 아랑곳없이 패를 지어싸웠던 500년이었다고도 생각했다.

왜구들의 보호라도 받아야겠다고 나선 이완용(李完用)같은 매국노가 생기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완용(李完用)도 자기나름대로 생각이 있었겠지만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느데에는 깊은 까닭이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어째서 중신들이 자기나라의 사직이 무너지는 것도 모를까? 그것만은 알텐데…」그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생각에 잠겼다.

왜구의 보호를 받는 식민지가 되었다고 선비들을 울분을 토했지만 막상 나라를 찾아야겠다고 나서는 선비들은 드물었다. 우선 남이 대우해주기를 바라고 한 가정에서도 남으로부터 대우를 받기를 좋아하는 양반들이나 선비들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마침 조정에서 벼슬을 내린 민종식(閔宗植)대감이 청양(靑陽) 칠갑산(七甲山)아래 천장(天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기회가 이번뿐이 아니겠는가? 하고 자기도 그쪽으로 마음을 쏠린다.

백관형(白觀亨)은 이대로 앉아있을수만은 없다고 생각하였는지 문을 차고 집을 나간다. 그리고선 마을과 마을부근의 선비와 젊은이들을 규합해서 의병에 가담을 한다.
민종식(閔宗植)대감의 의병들은 파죽지세로 몰려들어선 고을마다 점령하고 잠깐사이에 홍주로 쳐들어갔다. 책을 팽게치고 의병에 가담한 백관형(白觀亨)도 28세의 나이로 홍주성(洪州城)으로 쳐들어갔다. 자기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백성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라를 젊은이가 지켜야 한다고 그는 쳐들어 오는 적과 싸웠다.

우리나라 백성의 목숨같은 것은 헌 신짝만치도 생각지않는 왜구들은 마구 총을쏘기 시작했다. 그는 용감했었다. 백관형(白觀亨)은 닥치는데로 적을 죽였다. 손에는 몽둥이 하나였지만 총을 들고 덤벼드는 왜구의 침략같은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얼마를 싸우다가 주위를 돌아봤다. 벌써 홍주성(洪州城)은 왜구의 손아래 들어가 있었다. 그는 몽둥이를 팽게치고 쏟지는 눈물을 억제하면서 성벽을지나서 그냥걸었다. 자기의 주위로 총탄이 떨어졌으나 그는 꿋꿋하게 걸으면서도 속으론 울고있었다. 「이것이 우리백성의 싸움인가? 눈물이냐?」쉽게 풀이해서 나라를 잃었으면서도 정신무장이 허술한 아래와 위를 나무래는 그이 울분이었고 슬픔이었다. 그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왔었다. 집에 돌아와서 자기를 생각하니 자기가 너무나 슬펐다.

그는 책을 챙겨서 한쪽에다 미뤄놓고 이제부터는 나라를 찾는일에 몸을 바치기로 눈을 부릅뜬다. 백관형(白觀亨)은 홍주(洪州)싸움이후에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그는 가는곳마다 사람들에게 잃은 우리나라는 우리가 찾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우리가 어째서 나라가 없는 백성이냐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그는 마침내 충북 만동묘제(萬東廟祭)에 참가하게 되었었다. 여기서도 그는 나라의 독립을 외치며 왜적을 몰아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고종(高宗)의 서거가 왜적의 음모에서 이뤄졌음을 폭로하자 왜구에게 잡히게 되었다. 그는 3개월간 옥고를 치르면서도 내가 나를 찾겠다는데 어째서 나를 가두느냐고 소리쳤다. 그는 감옥에서 나와선 총독(總督)에게 퇴방장서(退邦長書)를 보냈으며 왜적 침략을 폭로한 죄로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 갇히게 되어 5년간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는 끝까지 우리는 자주독립을 원한다고 역설하였다. 5년은 긴세월이었다. 그는 감옥에서 5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출옥해선 감옥에서 얻은 여독으로 한달후에 영원히 눈을 감았다. 나라를 찾아야겠다고 외치며 이조500년의 긴 역사가 나라를 팔아먹는 비극이 되었다고 서술하고 강하지 못한 백성들을 깨우치다가 죽은 백관형(白觀亨)은 우리고장의 위대한 의사(義士)요 또한 보령 5열사의 한분으로 존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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